지난 1월, KT스튜디오지니가 만든 숏폼 드라마 한 편이 글로벌 차트 1위에 올랐다. 제목은 <청소부의 두번째 결혼>. 한국 배우가 나오고, 한국어로 대사를 치고, 한국 배경으로 꾸며진 이 드라마는 공개 직후 ‘드라마박스’와 ‘릴숏’에서 나란히 1위를 기록했다.
KT스튜디오지니는 이를 ‘K-숏폼의 글로벌 도약’이라고 선언했다. 미디어들도 받아썼다. 그런데 그 성과를 한 겹만 걷어내면 불편한 구조가 나온다.
KT는 무엇을 했는가 — 사실 관계부터
KT스튜디오지니는 콘텐츠를 제작했다. 박한별, 고주원이라는 실제 한국 배우가 출연했고, 한국 일상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작 주체는 한국 기업이다.
그런데 이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드라마박스’는 싱가포르 법인이지만 실질적으로 중국계 자본이 운영하는 플랫폼이다. ‘릴숏’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숏폼 드라마 앱 수익 상위 5개사가 모두 중국계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수치다. KT스튜디오지니는 이들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파트너로 참여했다.
KT스튜디오지니가 드라마박스와 맺은 계약 구조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 일반적인 구조를 보면, 콘텐츠 공급사는 판권료나 수익 배분을 받고, 플랫폼 운영에서 발생하는 구독·과금 수익은 플랫폼사가 가져간다.
돈은 누가 버는가 — 수익 구조의 민낯
릴숏과 드라마박스의 지난해 1분기 인앱구매 수익은 각각 1억 3000만 달러, 1억 2000만 달러였다. 전년 대비 30% 안팎 성장한 수치다. 전 세계 숏폼 드라마 수익의 절반이 미국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 돈을 걷어가는 주체는 중국계 플랫폼이다.
드라마박스는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한국을 미국에 이은 두 번째 콘텐츠 생산 기지로 육성하겠다.” 한국의 배우와 제작사, 스태프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로 글로벌에서 수익을 올리겠다는 뜻이다. 한국은 공장이고, 수익은 플랫폼이 가져가는 구조다.
한국 기업이 만든다 → 중국계 플랫폼이 유통한다 → 글로벌 이용자가 결제한다 → 수익은 플랫폼(중국계)이 가져간다. KT스튜디오지니는 이 구조에서 콘텐츠 공급자 역할을 맡았다.
한국 현실 왜곡은 왜 일어나는가 — 구조의 필연
<청소부의 두번째 결혼>에는 한국이라는 배경이 등장하지만, 실제 한국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것은 제작진의 의도가 아니다. 숏폼 드라마 장르 자체의 문법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결과다.
숏폼 드라마는 1~2분 안에 위기, 절정, 반전이 모두 들어가야 한다. 한 숏폼 제작자가 말한 대로, “일단 따귀부터 때리고 시작”하는 장르다. 현실적인 맥락, 입체적인 관계, 사회적 배경은 모두 생략된다. 남는 건 재벌, 청소부, 극적인 신분 역전, 복수 같은 자극적 설정뿐이다. 중국 숏폼 플랫폼 대표의 말이 이를 압축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목적은 오직 팔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 왜곡된 한국의 이미지가 드라마박스를 통해 미국, 동남아, 일본 이용자에게 ‘한국 콘텐츠’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중국 플랫폼의 문법으로 재단된 한국의 모습이, K-콘텐츠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로 퍼져나간다.
기업을 탓하기 전에 봐야 할 것
KT스튜디오지니의 선택을 단순히 비도덕적이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시장의 논리 안에서 그들의 판단은 나름 합리적이다. 숏폼 드라마 시장은 2023년 50억 달러에서 2030년 260억 달러로 성장이 예측된다. 이 시장에서 유통망을 쥔 것은 중국계 플랫폼이고, 한국에는 글로벌 규모의 자체 플랫폼이 없다.
비글루, 숏차 같은 한국 플랫폼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릴숏과 드라마박스의 월 매출 400~500억 원에는 아직 비교가 안 된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계 플랫폼을 통해 유통하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에 닿을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 일부 플랫폼은 한국 법인도 없이 한국어 자막만 붙여 콘텐츠를 유통하며 국내 영상물 심의 규제조차 피해가고 있다.
이것이 기업의 선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플랫폼을 키우지 못한 국가와 산업 전체의 구조적 문제다.
우리가 판단해야 할 것
두 가지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하나는 KT스튜디오지니의 선택이다. 중국계 플랫폼이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그 과정에서 한국 현실이 왜곡되는 문제, 수익 구조의 비대칭성에 대해 KT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 이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이다.
다른 하나는 구조의 문제다. 한국에 자체 글로벌 플랫폼이 없는 한, 한국 콘텐츠는 계속 중국계 유통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개별 기업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플랫폼 없이 콘텐츠만 만드는 나라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는지, 그 질문이 더 본질적이다.
K-콘텐츠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시대에, 그 콘텐츠를 세계에 유통하는 채널을 우리가 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조용한 위기다. KT스튜디오지니의 1위 뉴스를 보며 박수 치기 전에, 그 1위가 누구의 플랫폼 위에서 나온 것인지는 한 번쯤 물어볼 만하다.
플랫폼을 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구조는 반도체 시장에서도 똑같이 작동합니다. HBM 이후 SK하이닉스의 다음 먹거리를 다룬 글도 참고해보세요.






